(평양 9월 18일발 조선중앙통신)
18일부 《민주조선》에 실린 개인필명의 글 《〈운양〉호사건을 통해 본 일본의 침략적본성》의 전문은 다음과 같다.
지금으로부터 149년전인 1875년 일본사무라이들은 《운양》호를 타고 우리 나라에 대한 무장도발을 감행하였다.
일본침략자들은 《명치유신》후 《정한론》을 제창하며 조선강점을 꿈꾸었지만 당시까지 조선을 침략할만한 힘이 부족했기때문에 교활하게도 《관계개선》이라는 허울좋은 간판을 내걸고 조선봉건정부를 회유기만하였다.그러나 1870년대중엽에 들어서면서 일본에서 군국화가 추진되고 제국주의렬강들과 일본의 공모결탁이 새로운 단계에서 이루어지면서 일본군국주의자들은 조선에 대한 로골적인 무장도발단계에로 넘어갔던것이다.
일본침략자들은 무장도발로 조선봉건정부를 위협공갈하여 불평등적인 조약을 체결하며 나아가서 조선을 군사적으로 강점하기 위한 구실을 마련하려 하였다.
일본침략자들은 우리 나라에 기여들자마자 그 무슨 《연습》을 한다고 하면서 함포를 쏘아댔는가 하면 우리 나라 령해를 제멋대로 싸다니며 군사정탐행위를 감행하였다.
그후 《운양》호의 무장강도들은 청나라의 우장까지 가는 배길을 측량한다는 얼토당토않은 구실로 또다시 우리 령해에 깊숙이 침입하였으며 즉시 물러가라는 조선봉건정부의 요구에 응할 대신 오히려 《먹는물을 찾는다.》고 하면서 당시 조선봉건국가의 수도를 지키는 군사요충지에까지 접근하였다.격분한 우리 군사들은 침략자들에게 불벼락을 안기였다.
그러자 일본침략자들은 때를 기다렸다는듯이 함포를 쏘아댔다.수비병들의 완강한 방어에 부딪쳐 더이상 범접할수 없게 된 일본침략자들은 배길을 돌려 아무런 방어시설도 없는 섬마을들을 습격하여 수많은 주민들을 살륙하고 략탈과 방화를 일삼다가 분노한 조선군대의 된타격을 받고 쫓겨나지 않으면 안되였다.
이것이 바로 《운양》호사건의 전말이였다.
사실이 그러함에도 일본군국주의자들은 도적이 매를 드는 격으로 《군함의 급수를 방해했다》,《일본국기를 모욕했다》고 생트집을 걸면서 《운양》호사건에 대한 책임을 지라고 조선봉건정부를 강박하였으며 1876년에는 침략적인 《강화도조약》을 강압체결하였다.
일본군국주의의 호전성과 악랄성을 적라라하게 과시한 《운양》호사건의 조작으로 조선에 대한 무력침공의 서막을 연 일본침략자들은 《강화도조약》을 발판으로 끝끝내 조선을 저들의 완전한 식민지로 타고앉았으며 장장 수십년간 조선민족과 아시아의 수많은 인민들에게 헤아릴수 없는 불행과 고통을 강요하였다.
해외침략야망에 들떠 태평양전쟁까지 일으켰던 일제가 패망한지도 근 80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
그러나 그 오랜 세월 어느 한순간도 해외침략야망을 포기한적이 없는 일본이 오늘은 전패국으로서 걸머져야 할 의무를 다 줴버리고 침략의 기회만을 호시탐탐 노리고있다.일본의 부산스러운 군사적움직임은 사실상 피로 얼룩진 범죄의 력사가 되풀이될수 있는 위험이 커가고있다는것을 시사해주고있다.
침략의 무리는 오직 정의의 총대로 다스려야 한다는것은 력사가 가르친 진리이다.
일본이 또다시 대륙침략의 길에 나선다면 그것은 다시는 솟구칠수 없는 자멸의 길로 될것이다.(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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