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토지자원강탈에 미쳐날뛴 날강도의 범죄행적

(평양 3월 26일발 조선중앙통신)

26일부 《민주조선》에 실린 개인필명의 글 《조선토지자원강탈에 미쳐날뛴 날강도의 범죄행적》의 전문은 다음과 같다.

과거 우리 나라를 강점한 일제가 감행한 극악무도한 범죄들가운데는 조선의 토지를 마구 강탈한 범죄도 있다.

일제의 토지략탈행위는 단순한 경제리권강탈행위가 아니라 조선을 저들의 완전한 식민지로 만들기 위한 식민지예속화정책의 산물이였다.

당시 우리 나라 농촌에는 봉건적인 토지소유관계가 지배하고있었으며 농민들이 인구의 80%이상을 차지하고있었다. 이러한 실정에서 일제는 조선에서 토지에 대한 소유권을 장악해야만 인구의 절대다수를 이루는 농민들을 지배하며 경제의 기본명줄을 틀어쥐고 식민지지배권을 강화할수 있다고 보았다.

이런데로부터 일제는 우리 나라를 강점한 첫날부터 조선의 옥토에 눈독을 들이였다.

1900년대에 들어서면서 여러 악법을 조작하여 우리 나라의 토지를 강탈할수 있는 길을 열어놓은 일제는 1910년부터는 《토지조사사업》이라는 구실밑에 토지략탈에 본격적으로 달라붙었다.

1910년 3월 우리 나라에서의 토지략탈을 로골화할 흉심밑에 《림시토지조사국관제》라는것을 제정한 일제는 1912년 8월에는 《토지조사령》을 공포하고 수많은 군대와 헌병,경찰들까지 동원하여 토지수탈을 감행하였다.

일제는 《토지조사령》에서 토지소유자는 조선총독이 정한 기한내에 주소,성명 또는 소유지의 명칭,등급 등을 림시토지조사국에 신고하여야 한다고 규정하였다. 이로써 일제는 조선봉건정부가 인정해온 토지소유관계를 일체 무효로 선포하고 토지소유권을 《재조사》하도록 하여 오직 저들에게 《승인》받은것만 《법적으로 인정》한다는것을 공포하였다.

교활한 일제는 《토지조사사업》이 마치도 토지소유권을 《보호》하고 그 리용을 《자유롭게》 하기 위한것인듯이 떠벌이였다. 하지만 그것은 저들의 강도적토지략탈행위를 은페하기 위한 음흉한 술책에 불과하였다.

일제는 토지소유권에 대한 신고방법과 절차를 까다롭고 복잡하게 만들어놓음으로써 많은 조선농민들의 토지를 저들과 친일주구들의 소유로 되게 하였다.

특히 일제는 각종 회사들을 조작하여 토지략탈에 광분하였다.

그 대표적인 회사의 하나가 악명높은 《동양척식주식회사》(동척)였다.

《동척》은 총독부의 사촉밑에 조선전역에 지점들을 설치하고 수많은 토지를 《국유지》라는 명목으로 빼앗아 차지하였으며 그밖에 여러가지 교활한 방법으로 조선의 광대한 토지를 대대적으로 략탈하였다. 결과 《동척》의 수중에 장악된 토지는 1910년이후 7~8년사이에 급격히 늘어났다.

일제는 《동척》뿐 아니라 기타 저들의 다른 회사들에도 토지를 넘겨주거나 그들로 하여금 여러가지 사기협잡의 방법으로 토지를 략탈하게 하였다.

실로 일제가 《토지조사령》을 실시하여 수탈해낸 조선농민들의 토지는 매우 방대한것이였다.

일제의 날강도적인 토지략탈로 하여 조선에서 일본인대토지소유자가 대폭 늘어났다.

반면에 조선의 대다수 농민들은 조상대대로 내려오면서 농사짓던 자기의 귀중한 땅을 떼우고 하루아침에 소작농으로 굴러떨어졌으며 살길을 찾아 타향으로 떠나지 않으면 안되였다.

수십년에 걸치는 식민지통치 전 기간 제땅이 없어 우리 인민이 흘린 피눈물은 그 얼마이며 일제의 가혹한 착취로 가난과 빈궁에 시달려야 했던 우리 인민이 겪은 고통과 불행은 또 얼마나 큰것이였는지 이루 다 헤아릴수 없다.

《토지조사사업》이라는 명목밑에 감행된 략탈행위는 일제야말로 가장 악독한 략탈자,우리 인민의 불구대천의 원쑤이라는것을 실증해주고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반동들은 우리 나라에 대한 일제의 식민지통치를 조선의 근대적발전에 《영향》을 준것처럼 력사를 외곡날조하다못해 치떨리는 죄악의 력사를 되풀이하기 위해 미쳐날뛰고있다. 이것은 과거범죄우에 죄악을 덧쌓는 행위로서 우리 인민의 대일적개심을 더욱더 격앙시키고있다.

죄악에는 반드시 처절한 대가가 뒤따르기마련이다.

우리 인민은 일제의 만고죄악의 대가를 천백배로 받아내고야말것이다.(끝)

www.kcna.kp (2025.03.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