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민족에 대한 침략과 강탈로 이어진 죄악의 력사

(평양 7월 9일발 조선중앙통신)

9일부 《민주조선》에 실린 개인필명의 글 《타민족에 대한 침략과 강탈로 이어진 죄악의 력사》의 전문은 다음과 같다.

일본의 근대사는 타민족에 대한 침략과 강탈로 얼룩져있다. 일본은 오래전부터 타민족에 대한 무제한한 침략과 강탈에서 출로를 찾고 다른 나라들을 억압하고 착취하기 위한 해외침략을 기도하였다. 력사에 일명 《다나까상주서》로 악명떨친 일본의 해외침략정책을 놓고보아도 그렇다.

1927년 《동방회의》에서 토의확정된 침략계획에 따라 당시 총리였던 다나까 기이찌는 왜왕에게 후날 《다나까상주서》로 불리운 한건의 비밀문건을 제출하였다. 범죄적인 이 《상주서》는 이미 완전한 독점적식민지로 틀어쥔 조선을 발판으로 하여 만주와 몽골을 먹고 다음에는 중국을 정복하며 나아가서 아시아를 제패하는것이 일본의 기본국책으로 되여야 한다는 내용으로 일관되여있었다.

당시 일본에서는 파국적인 금융공황으로 인한 정치적위기와 사회경제적혼란이 급격히 증대되고있었다. 자국내의 심각한 위기로부터의 출로를 해외침략에서 찾은 일제는 이것을 국책으로까지 규정하였던것이다.

《다나까상주서》에 밝혀진대로 일제는 1931년 9월 18일 만주사변을 조작하고 중국의 동북지방에 대한 무력침공을 감행하였으며 1937년 7월 7일에는 로구교사건을 조작하고 중국관내에 대한 전면적인 무력침공을 감행하였다.

일제의 세계제패야망은 1940년에 이르러 악명높은 《대동아공영권》으로 보다 구체화되고 체계화되였다.

일제군부의 통제밑에 있던 《총력전연구소》에서 완성한 《대동아공영권건설안》은 크게 세단계로 되여있었다.

첫 단계는 일본을 중심으로 조선,만주,북중국,장강하류지역 및 쏘련 연해주지방을 포괄하는 《대동아공영권》의 《중핵권》지대를 창설하는 단계이다. 둘째 단계는 이 《중핵권》지대에다 동부씨비리,전 중국령토,동남아시아반도 및 태평양남부의 섬들을 덧붙인 《소공영권》을 창설하는것이며 셋째 단계에서는 이를 더 확장하여 오스트랄리아,뉴질랜드,인디아,태평양의 여러 섬들을 련결하는 《대공영권》을 창설한다는것이였다.

일제는 나아가서 중동지역과 아프리카 및 아메리카까지 포괄하는 《대동아상업팽창권》도 망상하였다.

《대동아공영권건설안》은 일제가 태평양전쟁을 도발하면서 본격적인 실행단계에 들어섰다.

1942년 강점지역 나라들을 합쳐 《대동아성》을 창설한 일제는 1943년 2월에는 《대동아건설심의회》라는것을 조작하였다. 또한 1943년 5월에는 《대동아전략지도대강》이라는것을,7월에는 《대동아건설근본방침》 등을 조작하였다.

일제의 《대동아공영권건설안》의 실행과정은 피비린 죄악의 련속이였다.

일제의 군화발이 닿는 곳마다에서는 무고한 인민들의 피가 넘쳐흘렀다. 조선과 중국,동남아시아의 수많은 사람들이 일제의 총알받이나 성노리개,인체실험대상으로 비참한 노예생활과 참혹한 죽음을 강요당하였다.

침략야망실현을 위한 일제의 만행으로 우리 나라와 아시아나라 인민들이 당한 불행과 고통은 그 얼마인지 모른다.

이렇듯 세계를 타고앉을 야망에 들떠 반인륜범죄만을 일삼던 일제가 패망한지도 어느덧 80년세월이 흘렀다.

하지만 세대와 세기가 바뀌여도 바뀌지 않은것이 있으니 그것이 바로 해외침략으로 규정된 일본의 국책이다.

사무라이후예들은 오늘까지도 저들의 패망은 힘이 약했던 탓이라고 하면서 사죄와 배상은커녕 군사대국화에로 미친듯이 질주하고있다. 전후 전범국인 저들의 손발을 묶어놓았던 온갖 제재조치들을 야금야금 벗어버리며 발판을 닦아온 일본이 오늘날에는 해외침략의 직선주로에 뻐젓이 나서고있다.

력사를 외면하면,력사의 교훈을 망각하면 차례질것은 쓰라린 패배와 멸망뿐이다.

오늘의 세계정치구도도 한세기전 일제가 아시아를 제멋대로 짓밟던 때와는 근본적으로 달라졌다.

《대동아공영권》의 망상에 들떠 현실감각마저 무디여진 일본이 죄악의 력사에서 교훈을 찾지 못하고 또다시 해외침략에 나선다면 기필코 종국적파멸을 면치 못할것이다.(끝)

www.kcna.kp (2025.07.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