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방의 서예와 문화발전에 이바지한 고조선서예

(평양 1월 20일발 조선중앙통신)

지혜롭고 재능있는 우리 인민은 오래전부터 자기의 글씨체를 가지고 서예를 하였으며 서예생활을 통하여 동방의 문화를 꽃피웠다.

첫 노예소유자국가였던 고조선시기(B.C.30세기초- B.C.108년) 우리 인민은 국가활동과 문서거래실현을 위한 표기수단으로서 신지글자를 창제하였고 그에 따라 글쓰기생활을 시작하였다.

당시 서예활동은 국가문서들에는 물론 각종 기념비문들의 글을 비석 또는 바위들에 쓰거나 벽돌,기와,그릇,단검을 비롯한 건축물,기호품,일용품들에 그 형태와 내용에 맞게 필체를 살려쓰는 방법으로 진행되였다.

력사유물들인 룡천군 신암리의 토기와 락랑벽돌 등에는 고조선고유의 글자필적들이 새겨져있다.

고조선서예는 초기부터 서예대상의 특성에 맞게 조형미를 살리면서 여러가지 필법과 형상수법들을 창조하면서 발전하였다.

비석에 새긴 국가적성격의 글은 글뜻에 맞게 여러가지 기법의 붓질로써 획을 무게있고 듬직하게 그어 장중하게 형상하였다면 락랑벽돌에 새겨진 글은 건축재료의 모양새와 성격에 맞게 네모난틀거리안에 획을 안정감이 나게 형상하였으며 생활도구인 굽접시에서는 세움붓질로 필세를 살려씀으로써 움직임적인 형상력을 돋구었다.

고조선서예는 당시 신지글자와 함께 주변나라들에 전파됨으로써 동방의 서예와 문화발전에 이바지하였다.(끝)

www.kcna.kp (2026.01.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