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학적인 비유법을 구사하시며 하신 당부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1959년 3월 어느날 경성도자기공장을 돌아보시면서 제품의 질이 높지 못한것을 료해하시였다.

이전보다 제품의 질이 좀 나아지기는 하였지만 아직 두텁고 색이 희지 못하며 규격도 일정하지 못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떠나실무렵 마당에 나온 성형공처녀들을 둘러보시다가 동무들이 만든 도자기는 동무들처럼 곱고 아름답지 못한게 탈이라고 하시며 녀성들이 아침에 일어나 세면을 한 다음 거울을 들고 눈섭을 그리고 화장을 하는것처럼 제품을 정성들여 곱게 만들어야 한다고 하시였다.

계속하시여 도자기를 만드는 일은 섬세성과 정밀성을 요구하는 하나의 예술이라고 하시면서 앞으로 제품의 질을 지금의 3점수준에서 5점수준으로 높일수 있겠는가고 물으시였다.

확신에 찬 로동자들의 결의를 들으시고 나서 그이께서는 공장을 떠나시였다.

수령님께서는 그후 도자기의 질개선에서 일정한 성과가 이룩되였을 때 공장에 다시 찾아오시여 기사장에게 집에 어린아이가 있는가고 물으시며 우리가 아버지노릇을 잘하려면 아이들의 밥그릇을 더 많이 만들어주어야 할것 같다고 하시며 제품의 가지수와 량을 더욱 늘여나가도록 고무추동해주시였다.

비판이나 추궁이 아니라 해학적인 비유법으로 하시는 그이의 교시에 공장일군들과 로동자들은 커다란 량심상의 가책을 받고 그후 도자기의 질을 개선하고 그 가지수와 생산량을 늘이기 위한 투쟁에서 성과를 이룩하였다.(끝)

www.kcna.kp (2026.05.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