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조국해방전쟁시기 각지에서 인민유격투쟁 전개

(평양 7월 24일발 조선중앙통신)

세계전쟁사가 알지 못하는 기적적인 전승사의 갈피속에는 적강점지역에서 적극적인 무장투쟁을 전개하여 적들을 전률케 한 인민유격대들과 소년빨찌산,소년근위대들의 위훈도 새겨져있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1950년 9월 27일 도당위원장협의회에서 하신 연설 《일시적인 전략적후퇴와 당단체들의 과업》,1950년 10월 11일 전체 조선인민에게 하신 방송연설 《조국의 촌토를 피로써 사수하자》 등에서 유격대를 조직하고 그것을 정치군사적으로 강화하면서 유격전을 활발히 벌려 적들을 끊임없이 타격소멸할데 대하여 밝혀주시였다.

1950년 10월초 강원도에서 인민유격대가 처음으로 조직되였으며 전쟁전기간 그 수는 수십개로 늘어났다.

지남산,단천,철원,정평,금야,안변,흥남,북청인민유격대를 비롯한 많은 인민유격대들은 제2전선부대들과의 긴밀한 련계밑에 적지휘부와 유생력량을 소탕하였다.

곡산인민유격대는 146회의 전투를 통하여 1 600여명의 적을,함경남도지역의 유격대들은 360회의 전투에서 4 000여명의 적을 각각 살상포로하였으며 벽성,녕원,혜산,신흥,정평 등지의 인민유격대는 정찰조,습격조,매복조를 편성하고 불의적인 습격전을 단행하여 적들에게 무리죽음을 안기였다.

각지 인민유격대원들은 이르는 곳마다에서 적의 철도,도로,다리,통신선들을 파괴하여 적들의 전선수송과 기동을 파탄시키고 지휘체계를 마비시켜 적배후에 혼란을 조성하였다.

그들은 조성된 정세의 요구에 맞게 활동범위를 넓히면서 제2전선부대들,경비대부대들과의 협동밑에 도시와 마을을 해방하기 위한 전투들도 벌리였다.

사랑하는 조국과 고향마을,학교를 지켜 복수의 총을 억세게 틀어쥐고 투쟁한 소년단원들의 장한 모습도 위대한 전승사에 용감한 군상으로 새겨져있다.

미제살인귀들이 한 지역을 점령하면 한개의 소년근위대가 조직되였고 두개의 지역을 점령하면 두개의 소년빨찌산이 무어져 황해도지구의 구미포소년근위대,중산소년공작대,국사소년공작대,평양시와 평안남북도지구의 모란봉소년근위대,선천애육원소년근위대,함경남북도지구의 박주산소년근위대,원흥소년복수대를 비롯하여 공화국의 거의 모든 지역에서 무려 60여개에 달하는 소년근위대,소년빨찌산 등이 련이어 태여났다.

그들은 수천명의 군중을 대상으로 구두선전을 벌리고 삐라,벽보,만화 등의 직관선전으로 인민들을 고무하였는가 하면 적들이 둥지를 튼 건물에 공화국기를 띄워 사람들에게 승리의 신심을 안겨주었다.

적들의 통신선을 끊거나 자동차길우에 못판을 박아 운행을 마비시키고 경찰서를 습격하여 수많은 애국자들을 구원하였다.

적들에게 위협편지와 경고장을 보내고 인민군대가 재진격해온다는 삐라를 내붙여 적들을 떨게 하였으며 위대한 수령님께 삼가 드리는 맹세문을 채택하고 결사전을 벌려 적들의 비행장의 신호등을 모조리 까부시는 영웅적위훈도 세웠다.

1951년 7월 5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는 조국해방전쟁에서 인민유격운동을 방조함에 특출한 공훈을 세운 소년단원들에게 국기훈장 제3급과 공로메달을 수여할데 대한 정령을 발표하였다.

조국해방전쟁시기 과감하게 벌어진 인민유격투쟁은 위대한 수령님에 대한 끝없는 충성과 조국에 대한 사랑,멸적의 증오로 피를 끓이며 떨쳐나선 우리 인민의 불굴의 신념과 의지를 과시하며 위대한 전승사에 뚜렷한 한페지를 장식하였다.(끝)

www.kcna.kp (2025.07.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