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드시 청산해야 할 일제가 남긴 피맺힌 원한

(평양 8월 10일발 조선중앙통신)

일제가 패망한 때로부터 어느덧 77년이 되였다.

세월의 흐름과 더불어 강산이 변하고 세대가 바뀌였지만 과거 일제가 저지른 죄악은 우리 인민의 가슴속에 영원히 아물지 않는 원한의 상처,피의 응어리로 남아있다.

지난 20세기초엽 일제에게 국권과 자원을 통채로 강탈당하고 자기의 문화와 이름마저 깡그리 빼앗긴 식민지조선은 살아도 숨쉴수 없고 죽어서도 묻힐 곳 없는 말그대로 중세기적암흑천지,하나의 거대한 인간생지옥이였다.

온갖 군사적위협과 날강도적인 방법으로 《을사5조약》,《정미7조약》,《한일합병조약》 등을 련이어 날조하여 우리 나라를 강점한 일제는 《조선사람은 일본법률에 복종하든가 그렇지 않으면 죽어야 한다.》고 고아대며 군대와 경찰을 내몰아 애국자들과 무고한 인민들,반일의병과 독립운동자들을 무참히 학살하였다.

1919년 3.1인민봉기자들에 대한 야수적인 대량학살,1920년의 간도대《토벌》,1923년 일본 간또대지진때의 대학살,광주학생운동탄압,6.10만세시위참가자들에 대한 탄압 …

일제는 야만적인 성노예제도를 내오고 《조선총독부》와 외무성 등 정부의 각 기관과 군대,경찰을 동원하여 20살미만의 처녀들,30살미만의 젊은 녀성들과 애기어머니들은 물론 10대의 미성년소녀들까지 《직업알선》 등 각종 명목으로 꾀여 닥치는대로 끌어갔다. 《위안소》들에 강제로 끌려간 녀성들은 하루에 보통 20~30명 지어 40여명의 장교들과 병졸들에 대한 《성봉사》를 강요당하였다.

강점기간 《징병령》,《륙군특별지원병령》,《학도병령》,《국민징용령》을 비롯한 각종 악법들을 조작한 일제는 840만여명의 조선청장년들을 강제련행,랍치하여 침략전쟁의 대포밥으로 내몰거나 가혹한 노예로동을 강요하였다.

일제는 《창씨개명》의 미명하에 조선사람의 성과 이름을 강제로 빼앗으려 하였다.

우리 나라의 곳곳에 《창씨개명상담소》라는것을 만들어놓고 성과 이름을 일본식으로 고칠것을 강박하였으며 조선의 모든 지맥을 살아있는 인체로 보고 그 지맥들에 쇠말뚝을 박으면 땅이 병들고 땅이 병들면 사람도 병들어 재앙이 따르게 된다고 하면서 주요산들과 명승지들 등에 쇠말뚝들을 박았다.

일제의 세균전만행은 지금도 만사람을 경악케 하고있다.

1937년이후에만도 일제는 731부대에서 약 4 000명의 조선사람들을 콜레라,페스트,장티브스 등 세균무기를 실험하는데 리용하였다.

패망이 눈앞에 다가온 1945년 8월 9일 수백명의 《수인》들을 청산카리와 기관총으로 살륙하고 그 시체마저 불태워버리였다.

패망한 이후에도 일제는 저들의 범죄력사를 영원한 흑막속에 묻어버리려고 조선사람들을 집단적으로 학살하였다.

미에현 구와나시 《특별작업대》내의 일본살인귀들이 징병에 끌려왔던 수많은 조선인들을 방공호에 몰아넣고 처참하게 죽인 사실,혹가이도,아오모리현,도야마현,지바현,가나가와현 등 일본각지에서 많은 조선사람들이 경찰 혹은 패잔병들에 의해 학살된 사실,싸할린에서 일본살인귀들이 귀국을 요구해나선 수백명의 조선사람들을 갱안에 몰아넣은 다음 폭파시켜 살륙한 사실 등은 일제의 범죄행적을 여실히 폭로하여주고있다.

사실들은 과거 일제가 우리 인민에게 저지른 반민족적,반인륜적죄악의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

일본반동들은 오늘까지도 저들의 과거죄악에 대한 사죄와 배상은커녕 인정조차 하지 않고있으며 오히려 이를 한사코 부정해나서면서 재침야망실현에 미쳐날뛰고있다.

일제가 조선인민앞에 저지른 모든 죄악은 천년,만년이 가도 절대로 숨길수도 덮어버릴수도 없다.

우리 민족은 과거 일제가 저지른 죄과를 대를 이어서라도 반드시 결산하고야말것이다.(끝)

www.kcna.kp (주체111.8.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