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화의 나날에 일떠선 기계제작공업기지

조국해방전쟁이 한창이던 1951년 3월 어느날이였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경제부문의 한 일군을 부르시여 해당 전문가들을 데리고 희천지구에 내려가 그 일대를 답사할데 대한 과업을 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에게 우리가 이번 전쟁을 통하여 자체의 튼튼한 기계제작공업이 있어야 한다는것을 뼈저리게 체험하였다고 하시면서 이제는 후방의 안전한 곳에 전망적인 튼튼한 기계제작기지를 창설하자는것이라고 교시하시였다.

그러시면서 기계제작공업기지를 지금부터 창설하여 전쟁이 끝나면 인차 우리 손으로 만든 공작기계들이 쏟아져나오게 해야 한다고,자신께서는 이번에 평양으로 나오면서 희천이나 덕천과 같이 동력기지도 가깝고 교통도 편리한 지대에 새로운 기계제작공업기지를 창설할것을 생각하였다고 하시였다.

나라의 모든것이 전쟁승리를 위해 복종되던 그 시기 승리한 조국의 미래를 내다보시고 주체적인 기계제작공업기지창설의 원대한 구상을 펼치시는 위대한 수령님을 우러르는 일군의 가슴은 격정으로 설레이였다.

그해 8월 희천지구에 새로운 기계제작공업기지를 창설할데 대한 당중앙위원회 정치위원회 결정이 채택되였다.

이렇게 되여 준엄한 전화의 나날에 나라의 믿음직한 기계제작공업기지가 일떠서게 되였다.(끝)